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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올라가면 왼쪽에 '메인라인' 표지판이 붙어 있는 집이 나온다. 그러나 아픈 다리를 쉬게 하고, 마른 목을 축하하며, 기분을 좋게 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 설을 앞두고 이 집이 이쯤에서 쉬고 있었다는 옛이야기에 따르면, 그 건물은 급하게 지어졌지만 술이나 간식을 팔기는커녕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완만한 오르막길을 걷다가 갑자기 우측을 바라보면 커다란 바위 얼굴이 보인다. 그냥 지나갈 수도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위 얼굴에는 두 개의 석형이 양각되어 새겨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위에 새겨진 탑이나 불상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 위에 비석을 새기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한국인들은 바위 얼굴에 귀중한 것을 새기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 '매비'를 어디서 다시 볼 수 있을까? 노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재미있다.


한쪽에는 '年年政政政' (동년 5월 두 나라 원수의 선정을 위한 기념비)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고, 다른 한쪽에는 '四ore四'(이면면)' ('희생자 위령비')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이묘노르라는 사람이 호노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d 백성을 사랑함으로서 이 기념비가 새겨진 연도는 1889년으로 추정된다. 웅장한 모습으로 세워진 이 비석이 시간이 지나면서 부서지거나 사라지기 어려울 정도로 바위에 새겨진다면 그야말로 '절대 절망적인' 방법일 뿐이다."


마애비를 지나면 ' mountain'이라는 팻말을 들고 산의 분위기가 더욱 깊어진다. 떠나는 관찰자들과 새로 임명된 관찰자들은 자신의 일을 '인수'하는 장소로 즐겨 이용했으며, 아마도 새로운 관찰자를 위한 작은 술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학구 건설은 1484년(성종 재위)에 관문을 설치했던 시기를 200년 앞당겼다. 현암 신승명은 팔왕폭포(용추)의 아름다운 경치에 지어졌다고 하는데, 팔왕폭포(용추)는 여덟 명의 요정들이 연주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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